폭탄주 얻어마셔도 기사는 제대로 쓴다고? 2011.12.14 미디어오늘

[미디어창] 한국의 기자들, 정치인과 너무 가깝다

권력은 저널리스트를 친구로 만들고 싶은 속성이 있다. 대통령 당선 이전에 정치인들은 주로 정치부장은 물론 유력한 기자들을 ‘자기식구’로 만들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스스로 그런 관리대상이 되기위해 노력하는 정치기자들도 있을 때는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권력이 돈과 술, 여자로 기자를 접대하며 친분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공식이다. 일본이 이런 전형을 보이며 ‘기자구락부’를 만들었고 한국은 그 흉내를 내 ‘기자단’이란 것을 만들었다. 물론 이제 공식적으로 과거와 같은 ‘기자단’은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유난히 정치부장 출신들과 돈독한 친분관계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전 감방으로 간 청와대 홍보수석 김두우도 중앙일보 정치부장, 논설주간 등을 거치며 언론계에서 맹활약하다가 권력의 손짓에 몸을 던졌다. 그가 부패혐의로 감방으로 간 지 얼마되지않아 문광부 차관 출신 신재민도 감방 동기생 신고를 했다.

이 대통령이 각별하게 신임한 신씨도 장관 만들어주려 했지만 너무 많은 재산문제로 중도하차했다. 그 역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 이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쌓았다고 한다. 이대통령 후보시절 선거캠프에서 아예 발벗고 나서서 그를 위해 집사노릇까지 했다고 한다. 그가 받은 이국철 스폰서의 금액은 10여년 동안 제대로 공개되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부터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 신재민 전 문화부 제 2차관, 김두우 전 정무수석실 정무2비서관.

내가 아는 한 다선 국회의원 정치인은 유력 언론사 기자들을 특별 관리하는 듯 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돈을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 끝에 주로 길흉사때 뭉치돈을 건넨다고 귀띔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초상집에 가서 봉투를 내밀면 두 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큰 돈을 건네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않는다는 것. 그 다음은 어려울 때 찾아와 조의를 표한데 대해 매우 감동한다는 것이다. 기자의 감동은 곡필로 보답되는 법이다. 왜 권력은 기자를 이렇게 타락시키는데 혈안이 돼 있을까? 간단하다. 집권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고 영웅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기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단순히 여론을 반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성하고 때로는 조작도 한다. 물론 권력자는 이를 타락으로 보지않고 ‘투자적 관점에서 인간관계 형성’으로 합리화 한다.

권력의 입장은 그렇다치더라도 권력을 감시, 견제해야 하는 기자의 입장은 다르다. 정론직필, 공정보도, 춘추필법(春秋筆法)...기자의 숙명을 묘사하는 이런 표현들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정치인들의 권력남용이나 부패를 정직하게 고발하고 감시해야 하는 기자는 도저히 정치인들과 친해져서는 안되는 외로운 직업이다.

문제는 한국의 기자들은 정치인들과 너무 가깝다. 이들이 사주는 폭탄주를 부끄럼없이 마신다. 이를 부정하는 기자들의 입장에서 이런 지적이 매우 불쾌하게 들리겠지만 일부에서 일어나는 문제라하더라도 그런 관행, 비행, 부조리가 근절되지않는다면 기자사회 전체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기자는 권력이나 권력이 내려보내는 낙하산 사장에 저항하다 해고 당하며 칼바람 맞으며 저항해보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또 어떤 기자출신은 장차관은 물론 공기업의 무슨 이사장, 사장, 감사 임원 등을 차지해 검은색 승용차에 따뜻하게 몸을 싣고 주먹을 들고 거리에서 물대포 맞고 있는 후배 기자들을 향해 ‘철없는 것들...’이라며 미소를 던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대통령실장에 하금열 전 SBS홀딩스 대표이사(사장)을 내정함에 따라 청와대 대통령실의 고위간부(수석이상급)에 SBS 출신이 3명이나 차지하게 됐다. 역시 기자출신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은 하 신임 실장 내정자에 대해 “SBS 전신인 서울방송 정치부장 시절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 대통령과 교류를 시작해 줄곧 (대통령과) 인간적 관계를 맺어왔다”고 발표했다.

인간적 관계라... 기자출신들은 어떻게 이렇게 이명박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흠모하게 됐을까. 왜 국민은 이런 기자들처럼 대통령과 ‘폼나는 인간적 관계’를 맺지못했을까. 일부 기자들만 추종하고 국민들로부터 신임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된 것은 혹시 이런 정치기자들이 이중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아일보 정치부장출신, 이명박 대통령의 언어 전문 마사지사 이동관 수석출신도 정치부장때부터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일부 정치 기자들의 언론과 권력의 영역구분없이 뛰어드는 몸가짐에 많은 후배기자들은 좌절한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기자정신은 무한하다. 선진언론은 권언유착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후진 언론은 권언유착을 벼슬로 착각한다. 정치 기자는 권력의 폭탄주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는 것을 ‘인간관계 형성’으로 정당화 한다. 참 기자는 권력의 술잔을 ‘노’라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술은 마시고 촌지는 받더라도 ‘기사는 바로 작성한다’고...이것이 한국처럼 공사구분 안되는 사회,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뭉친 사회에서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기자출신들이 벌써부터 내년 총선 공천을 위해 뛰고 있다고 한다. 기자들이 나도 한자리를 위해 선거캠프를 기웃거리고 있다고 한다. 권언유착을 전통으로 만드는 권력자에 대해서는 언론계가 이런 식으로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 한국언론과 정치의 공멸을 목격하고 있는 것도 부족한가.

권언유착 언론인들은 기자들이 먼저 안다. 기자들이 먼저 자정운동에 나서라. 내부 규정도 강화하라. 그래도 정치판에 가겠다고 하면 보내주더라도 유예기간을 둬서 불공정 보도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기자의 원칙, 규정조차 어기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선배에 대해 가혹한 비판의 칼을 들이대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하지않는 언론사들은 언론을 믿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인순이 딸 뉴스를 모든 국민이 다 봐야 할까 2011.12.12 미디어오늘

[미디어창] 반저널리즘적 행위… 최시중 광고 압박 기사는 왜 찾아볼 수 없나


국내 대부분 주요 매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인순이 딸 미국 명문 스탠포드 입학’ 기사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최시중 방통위원장 대기업 광고 책임자에게 광고 증액 요구‘ 기사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미디어 소비자들은 보편적으로 ‘인순이...’ 뉴스를 검색해도 ‘최시중...’ 뉴스는 쳐다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조중동에는 ‘최시중’ 뉴스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한두 신문만 편식하는 미디어 소비자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제목을 보더라도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울까를 생각하면 역시 ‘최시중...’뉴스가 밀립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뉴스소비는 현명하지 않습니다.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특정 매체들이 입맛대로 골라주는 것만 보게 되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균형잡힌 정보획득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뉴스는 정보적 가치의 유무를 판단해야 합니다. ‘인순이 딸...’ 뉴스는 보지않아도 됩니다. 정보적으로 별 가치가 없기때문입니다. 요즘 미국 명문대학교 한국학생들 많이 가는 편이고 많이 중도탈락하기도 합니다. 합격을 축하해줄 정도이지 뉴스감이 될만한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동아일보 12월12일자 31면.

중앙일보 12월12일자 32면.

‘최시중...’ 뉴스는 정보적 가치가 높습니다. 우선 종편에 대해 대기업이 광고 지출을 높이게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들 즉 우리들에게 전가됩니다. 인순이 아들의 유학비는 인순이가 걱정하면 되지만, 최시중의 종편 광고 걱정은 바로 시청자들의 주머니를 털게 되기때문입니다.

두 번째, 뉴스의 접근성입니다. 한마디로 ‘인순이...’ 기사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남의 이야기는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입니다. 그냥 재미로 봤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됩니다. 그러나 최시중의 이야기는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 내 주머니 사정’과 직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런가요.

최 위원장은 정치적 판단으로 한국의 방송시장 및 방송광고 시장의 여건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4 개의 종합편성 채널을 선물 주 듯 안겨줬습니다. 언론학자들 가운데는 종편을 신문사에 줘서는 안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줘도 된다는 일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4개에 대해서는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것 자체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산업논리, 미디어 업계의 논리가 정치논리에 압도되면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었습니다. 최 위원장이 지난주에 출범한 종편에 대해 황급하게 대기업 광고 임원들을 불러 ‘종편이라 언급하지 않고’ 광고 증액을 요구하며, 광고를 산업의 관점에서 보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지막으로 뉴스의 교육적 영향력입니다.

미디어가 앞장 서서 일류를 조장하는 것은 한국사회를 실력보다는 일류대 졸업장 문화를 고착화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그가 어느 대학 들어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특정 대학 법대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했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당사자가 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로 전락하여 우리사회 짐이 되는 시대입니다. 미디어가 능력보다 껍데기를 중시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저는 국가의 정책이 잘 정착되도록 돕고 문제점을 보완하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또한 과정, 과정을 거치면서 보여준 정치적 집념과 정치적 판단의 결과물, 종편은 결국 미디어 소비자들, 국민 개개인의 주머니를 털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의 세계적 미디어 그룹의 탄생을 설혹 가져온다하더라도 다수의 희생으로 일부 언론재벌 배불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국가의 방송통신정책 최고 책임자가 특정 기업 광고 책임자들을 불러 광고비 지출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업계에 대한 압력이나 부당한 개입,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 사항을 알면서도 굳이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다시 KBS 수신료 인상이나 의약품 등 방송광고금지품목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오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 특정 언론사, 특정 권력집단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는 언론사들이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국민이 몰라도 될 정보’를 보도하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국민의 시간과 관심을 뺏는 반저널리즘적 행위입니다.




2011.12.12~13

강호동이 야쿠자? 동아 종편의 묻지마 인권유린 미디어오늘


[김창룡의 미디어창] 저널리즘 ABC부터 다시 배워라



연예계를 은퇴한 강호동씨가 2011년 12월 1일 새로 등장한 종합편성채널 채널A(동아일보)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내용이 충격적이다. ‘강호동이 일본 야쿠자와 연계된 듯 하다’는 것이다.

채널A는 이날 '강호동 야쿠자 연루설' 영상을 단독 입수했다며 "강호동이 지난 1988년 고교 씨름선수로 활동할 당시 일본 야쿠자와 국내 조직폭력 조직의 결연식 행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채널A는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일식집에서 열린 일본 야쿠자 가네야마구미(金山組)의 가네야마 고사부로(金山耕三朗) 회장과 국내 폭력 조직인 칠성파 이강환 회장의 의형제 결연식 자리였다"며 자세하게 정리했다. 많은 내용이 소개됐지만 강 씨가 야쿠자와 연루된 것 같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것도 23 여년전의 사진 하나만 달랑 내세웠다.

반론으로 강씨 측의 주장으로 “당시 일본에서 열린 위문씨름대회에 참가했는데 마침 단장(김학용 씨)이 밥이나 먹자고 해 갔던 것”이라며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몰랐다”고 동아일보 홈페이지 기사 맨 끝에 올려놓았다.

종편의 졸속출범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서도 이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한데는 바로 이런 류의 ‘묻지마’식 뉴스가 설익은 상태로 시청자들의 판단을 혼란시키고 당사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이 뉴스는 보도되기에는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ABC 조차 지키기 않은 것으로 보인다. 취재의 단서가 될만한 사안을 취재과정을 거치지않고 겉모양만 과장되게 만들어 완성품으로 내보낸 셈이 됐다. 강씨가 야쿠자에 연루된 듯한 사진이 나왔다면 그 후 그의 행적과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취재를 반드시 해야 한다. 기자라면 모르지 않는다.

더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은 고의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취재를 하지않고 내보냈다면 스스로 함량미달의 뉴스나 제작하는 신뢰할 수 없는 언론사라는 선전이 된다. 수십년전의 사진 하나를 가지고 이 정도로 사람을 공격하는데는 취재의 문제가 아니라 강씨를 의도적으로 흠집내기 위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은퇴한 방송인 강호동씨.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내용이 충격적일 경우 사실관계를 두 번 세 번 확인하도록 저널리즘은 강조하고 있다. 또한 충분한 반론권도 보장해야 한다. 이 뉴스에는 어디에도 그런 것이 지켜지지않고 있다. 그런데 사진 하나 그것도 수십년 사진 외에는 강씨의 야쿠자 연루설을 뒷받침 할만한 증언도 물증도 없다. 그럼에도 이처럼 ‘단독보도’를 내세워 무리한 공격을 한 것은 의도성이 다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특히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될 때는 제작진 외에도 부장, 국장 선을 거치며 ‘게이트 키핑(gate keeping-뉴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두 번 세 번 점검하는 과정)을 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거쳤는지도 의심스럽다. 그래서 고의성을 의심케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강씨는 비록 연예계를 은퇴했지만 여전히 일정한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국민 MC'임에 틀림없기때문이다. 그를 두고 종편들의 치열한 쟁탈전은 PD들 사이의 비밀아닌 비밀이 됐다. 이 과정에서 그와 프로그램을 성사시키지 못한 종편이 일종의 보복성으로 비치는 것은 프로그램이 졸속성이 웅변하고 있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야쿠자와 연계설’이라는 무시무시한 의혹을 연계시킨 보도를 하게되면 사실여부를 떠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게된다. 언론사 입장에서 나중에 오보일 경우 간단하게 정정하면 된다고 보지만 당사자는 회복할 수 없는 국민적 평가절하에 직면하게 된다.

더구나 현역에서 떠나 연예활동을 접은 강씨를 이렇게 살벌한 내용으로 폄하하는 것은 정상적인 저널리즘에서는 이상행위로 판단한다. 무엇보다 근거는 없고 수십년전 사진 하나로 야쿠자 연계설을 주장하는 식은 그 누구도 납득시키기 힘들다.

전반적인 종편의 졸속준비, 졸속제작이 단순 실수가 아닌 개인의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로 이어지는 것은 스스로 언론자유를 언론방종으로 타락시키는 결과가 된다. 언론자유는 개인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할 때 보호받을 수 있다.

채널 A는 조용하게 지내는 강호동씨의 사생활을 존중해준고 그의 명예 또한 존중해주기를 당부한다. 설이나 소문 정도를 뉴스로 내보내 생사람 잡는 식은 스스로 종편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강씨의 항변이 없더라도 빠른 시일내 정정 보도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논란속에 출범한 종편들의 과도한 시청률 경쟁과 상업주의는 철저한 경계 대상으로 시청자, 일반 시민들도 감시의 눈길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PD저널 : [시론] 인터넷 방송과 공영 방송의 대결(2011.11.21) 기타 기고문

뉴스와 정보의 수요·공급의 원칙이 무너지면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된다. 진실이 왜곡되고 여론이 무시되면 명분뿐인 공영방송은 존재감을 잃게 되고 인터넷 방송, 지하매체는 빛을 발하게 되는 법이다.

한국의 인기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이상열기는 국내를 초월해 해외에서도 관심사다. 얼마 전 미국의 권위지 〈뉴욕타임즈〉의 해외판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은 파격적으로 1면에 ‘나꼼수 열풍’을 다뤘다. 추가로 4 개면에 걸쳐 ‘반대의 목소리 온라인을 달구다’라는 제목으로 ‘MB, 보수언론의 불신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했다.

해외 언론은 물론이고 오프라인 상에서도 ‘나꼼수’는 대중의 폭발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의 1위 팟캐스트로 각 회에 200만 회나 내려 받는 등 인기는 예사롭지 않다. 서울의 1600석 공연장은 표를 구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풍자와 해학, 비꼬기, 과장 등을 양념삼아 현상을 비틀고 비꼬는 형식의 ‘나꼼수’에 왜 대중은 열광하는 것일까. 여기에 박수만 치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나꼼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공영방송의 사망선고.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모습, 공정한 보도의 기능을 상실한 한국의 공영방송의 보도행태가 국민의 높아진 정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KBS, MBC 사장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의 언행과 경영방식은 이미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켰지만 ‘방송장악’이라는 집권당의 지상과제 때문에 소통은 불통이 됐다.

둘째, 거대 신문사들의 저널리즘 기능 상실. 엄정 중립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내 주요 신문사들은 이미 정파적 보도를 일삼아 왔다. 나아가 종합편성채널권 확보와 광고 문제 등으로 이해당사자로 전락해서 현 정부의 특혜를 지속적으로 받아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있다.

특히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힘입어 방송 진출의 꿈을 이뤘고 이를 빠른 시간 내에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권력의 지속성과 특혜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공정, 중립, 알 권리같은 공허한 말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주요 신문과 방송의 왜곡된 보도, 편파 방송은 이해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셋째,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분노의 표출. 권력과 국민사이에서 소통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 주요 언론사들이 본연의 기능을 외면할 때 소통은 불통이 된다. 불통은 고통을 수반하게 되고 이는 국민을 불만 세력으로 만들어버린다.

‘나꼼수’를 보러 온 한 관객은 헤럴드 트리뷴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정부에 대한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공영방송,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거대 신문사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좌절감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나꼼수’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정부는 ‘나꼼수’를 옭아매기 위해 관련 법개정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떤 기형적인 법을 들고 나올지 우려스럽지만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현상에 매달릴 때 헛발질은 계속 될 것이다.

대안은 매우 간단하다. 현재의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장 주요하고 시급한 조치로 ‘낙하산 사장’ ‘조인트 사장’을 제거해줘야 한다. 종합편성채널을 두고 거대 신문사와 물밑거래와 특혜를 논하는 것으로 의혹 받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최시중 위원장도 좀 쉬게 해야 할 것이다.

  
▲ 김창룡 교수
그러나 현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나꼼수’의 이상열기는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고스란히 표심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내년 선거도 이길 수 없다고 벌써부터 낙심하고 있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의 왜곡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그 부담과 책임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로 간다는 진리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FTA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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